내가 진지하게 성인 ADHD임을 의심하게 된 건 인터넷에서 우연하게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이 쓴 글을 보게 되면서다. 그 글을 읽기 전의 나는 ADHD라 하면,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하며 왔다갔다하는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할 일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며, 때때로 '나 성인 ADHD인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ADHD에 대해 바로 알기 전의 난 부산스럽고 산만한 게 누가 봐도 보일 정도여야 ADHD라고 생각했으니 내가 ADHD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질 않았던 거다.

 

집중력이 약하고, 무언가를 잘 잊고, 정리정돈을 잘 못하고, 손과 발 등 몸을 꼼지락대는 것도 ADHD의 대표적 증상이라는 걸 알고 나니 이건 정말 내 얘기인 것만 같았다. '아, 나는 너무 덤벙대', '나는 뭘 하려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려', '정리정돈 잘 안해서 방이 엉망이야' 같은 말은 누구라도 많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단지 이런 점이 나랑 일치한다는 것만으로는 내가 ADHD일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과 발 등 몸을 꼼지락대는 게 대표 증상이라는 것이 날 확신하게 했다.

 

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 외에도 이와 비슷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잔동작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5살 쯤부터 시작한 듯한, 둘째 셋째 발가락 끝에 힘을 줘 누르기 (덕분에 발가락 모양이 울퉁불퉁하다고 20년 넘게 엄마에게 핀잔을 들어왔다.), 손가락을 맞대어 안쪽 살을 접기,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손가락 마디 꺾기, 손가락에 빳빳하게 힘 줘서 쫙 펴기, 손가락을 접어 손바닥에 포갠 후 누르기, 손목 및 발목 꺾기와 누르기, 종아리에 힘 주기, 발등을 종아리 쪽으로 당겨 종아리 근육을 쫙 펴기, 자려고 누워있을 때 반대쪽 발로 안마하듯 종아리를 툭툭 치기 등. 대부분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기억하지 못할정도로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된 버릇들이다.

 

글로 보면 이 많은 행동을 한단 말이야? 남들이 보기에도 다 티가 나겠는데?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움직이는 것이라기 보단 잔동작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버릇이 있어" 라고 말하기 전엔 가족도, 남자친구도, 친구들도 입을 모아 "진짜? 전혀 몰랐어" 라고 하는 버릇들이다. 왜 하는지 모를 행동들이다. 하지만 버릇이 돼서 늘 한다. 가만히 쉬고있을 때도, 일을 하다가도, 버스를 타고 있을 때도, 어떤 동작들은 걷고 있을 때도 한다. 왜 하는지 모를, 이제는 머리카락이나 손톱처럼 내게 언제나 붙어있는 게 당연했던 버릇들이 사실은 ADHD 때문일 수 있다니.

 

내 자신에게 ADHD와 상당히 유사한 증상이 여러가지 나타나는 걸 인지했음에도 병원에 가서 확진 판정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로 마음 먹기까지 갈등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신경정신과에 가는 걸 지나치게 쉬쉬하고, 다소 이상하게 보는 시각이 만연해 있는 게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선뜻 신경정신과에 가기로 결정하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

 

신경정신과는 감기나 피부염 등으로 병원을 찾는 것과는 조금 다른 심리적 허들이 있다는 점, 병원에 가기 시작하면 약을 몇 년간 먹어야 할지, 또 치료비가 얼마나 들지 모른다는 점, 또 '신경계통 약은 부작용으로 멍해지거나 머리가 나빠진다'는 류의 말들이 날 고민하게 했다. 사실 나 일상을 영위하는데 별 지장이 없는데, 증상들도 가까운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의 문제 행동들이고, 공부를 아주 잘한 건 아니지만 일반상식은 갖추었으며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라면 "잘 아네" 이야기 들을 정도니까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직전 회사에서도 대인관계 좋았으며 스트레스에 비례하는 책임감으로 팀의 빈틈을 매우던 막내였던지라 상사들에게 예쁨 받았다. 대단한 성취가 있는 삶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나쁘진 않잖아. 이대로도 괜찮은데 굳이 돈 주고 부담스러운 신경정신과에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날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하게 한 면들과는 반대로 바뀌고 싶고,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다. 회사를 떠나와 사업을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느꼈던 책임감이 덜하기 때문에 'ADHD스럽게' 일하는 탓에 그다지 능률도 오르지 않고,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점 (이대로 계속 일하면 난 결국 사업을 접어야만 한다), 정리정돈을 너무 못하고 소유욕도 강해서 방이 계속 어지러워만 지는 점, 중요한 물건과 할 일 등을 계속 까먹는 점, 화 내거나 싸울 줄 모르는 점, 그리고 그 외의 자잘한 불편함들.. 나는 이런 내가 썩 맘에 들지 않는데 ADHD를 치료받지 않으면 평생 이걸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 그러고 싶진 않아. 일단 병원에 가서 내 비전문적 소견으로 봤을 때만이 아니라 의사가 보기에도 ADHD가 맞는지 의학적 소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맞다면, 고치고 더 나은 삶을 사면 되는 거고, 아니라고 하면 와. 진짜 나 정신 좀 차리고 살자!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가볼만한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어 검사비용과 절차를 묻고, 한 곳을 골라 예약을 했는데 예약된 일정이 바로 내일이다. 아직 가족에겐 알리지 못해 사무실에 가는 척 하고 나와야 한다. 병원에 가기 전 미리 말을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확진 판정 전에 굳이 알릴 필요는 없는 듯해 아직은 함구하고 있다. 혹시 내일 상담 시 의사 선생님과 상담할 때 내가 내 스스로를 ADHD로 의심하게 한 증상들을 잊고 말하지 못할까봐 상세하게 메모도 해두었다.

 

걱정되고, 두렵지만 한 편으론 완전히 새로운 나를 만날 수도 있다는 두근두근함이 있다. 그리고 더 나은 나를 위한 선택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보단 긍정적인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해 보려 한다. 내일의 나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어떤 방향의 글을 쓰게 될지에 대한 여러 갈래의 상상으로 쉽게 잠 들지 못할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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